유리 아슈케나지는 그 날 밤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카잔에 도착한 둘쨋날이었다. 삼일의 시간을 얻었으나 첫 날에 이미 맡은 일을 끝낸 유리는 꽤 끝내주는 고층 호텔 안에 들어 있으면서도 도무지 갑갑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오전의 스카이라운지에서 창 밖의 성당을 가만 내려다보던 그에게 서버가 툭 말을 걸어 왔다. 미스터, 두고 가신 물건이라고. 처음부터 꺼림칙한 마음이 들었던 건 유리 스스로도 제 물건을 함부로 흘리고 다니지 않는 성격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답하지 않고 눈썹을 슬쩍 들어 보이는 그에게 검은 유니폼의 서버는 테이블 위로 시계 하나를 올려놓았다. 도무지 이 호텔에 묵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고리타분한 구시대의 손목 시계를. 굳이 각주를 달아야겠다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 정도로나 설명 가능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당사자는 머리를 돌로 세차게 얻어맞은 듯 충격받은 표정을 지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미스터. 미스터? 귓가를 왱 울리던 소리가 한 순간 잡혔다.


 멍청한 아슈케나지, 차라리 묻지를 말 것이지. 타는 목을 커피로 추스르며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반나절 내내 노트북을 손에 잡지 못하고 산만해진 적은 처음이었다. 막 씻고 나와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말리지도 않은 채 호텔의 전면유리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우뚝 솟은 푸른 첨탑의 끝이 저를 찌를 것처럼 느껴졌으나 눈을 돌릴 수 없다. 창에는 저녁 미사를 위해 불이 켜져 있었다. 오전의 상황을 회상해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걸, 이걸 누가 줬습니까? 튀어오르듯 의자에서 일어선 제게 서버는 조금 당황스럽다는 눈을 했으나, 제법 프로였다. 금세 표정을 되돌리며 고양이 상의 금발 여성분이었다 상냥하게 전달해 주었다.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였다. ㅡ어디로 갔습니까. 그건...아. 같이 계시던 남성분이 오늘 저녁 일곱 번째 미사에 늦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서버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에는 자신이 방금 전까지 넋 놓은 채 구경하고 있던 성당이 있었다.


 일곱 번째 미사?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손에 잡힌 차가운 시계에는 녹이 슬어 있었고 초침조차 멈춘 지 오래다. 쓰여진 시간은 반쯤 벗겨져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알아볼 수도 없다. 하나 분명한 게 있다면, 그 여자는 마르가리타가 맞다. 분명 그 집에서 나올 때 두고 온 시계였는데, 어떻게 이걸 제 손에 도로 쥐여 줄 생각을 한단 말인가. 잊고 있던 공허감이 터질 듯 흘러나와 절로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예상한 이별이었고 그 말이 리타의 입에서 흘러나올 때 두 사람은 꽤 태연했다. 둘은 이상했다. 서로를 티끌만치도 연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으나 동거했고, 기꺼이 상대의 형제가 되었다. 그 누구보다 가까운 남매가 되었을 무렵 리타는 당연한 이별을 이야기했다. 이제 그만 하자. 글쎄, 네가 나를 먹여살릴 수 있을 만큼 부자가 되어서 돌아오면 만나줄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장미처럼 웃는 그녀에게 자신 또한 웃어보였다. 그 때는 정말로 가족이 되어줄게. 마르가리타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흩어졌다.


 상체를 쏟듯이 앞으로 기울여 마른 세수를 한 유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선다. 자신을 어떻게 찾아내서 서버를 통해 전달했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만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었다.



*




 정갈한 교회 안에는 알 수 없는 공기가 돌고 있다. 자신은 평생 가까이 하지도 못할, 성스럽고 차분한 공기가. 멍하니 벽화 위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는데, 누군가 자신을 힐긋 쳐다보는 게 느껴져 뒤늦게 자신의 차림새를 돌이켜보고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채 마르지도 않아 흐트러진 머리와 가벼운 신발, 모직 코트 안에는 홈웨어라고 하는 게 적당할 정도로 느슨한 천옷까지. 과연 이 날씨에 성당에 올 차림새는 아니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머리를 두어 번 털어 정돈했다. 아직 저녁 미사가 시작되지 않은 성당 안은 고요했으나 사람이 적은 편은 아니었다.

그대로 천천히 발을 움직여 긴 의자 위에 고개 숙인 사람들을 한참 둘러보았다. 10분, 20분, 수상쩍게 비칠까 곁눈질로 구석의 사람까지 살펴보았으나 자신이 아는 이는 없다. 잘못 짚었나. 허탈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든 후 성당 밖으로 몸을 돌리려 할 때였다.


 마르가리타.

 좌측 문을 열고 들어온 여성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깨에 두터운 검정 숄을 얹고 짙은 루즈를 바른 저 여자는 분명 마르가리타다. 이전보다 훨씬 화려해진 옷차림, 고고함,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오만한 표정. 곁에 선 남자는 눈에 들이지도 않은 채, 저도 모르게 성당의 반대편에서 그녀가 움직이는 대로 걸음을 걷는다. 리타, 리타. 눌러 두었던 공허가 막을 새 없이 흘러나와 입술을 달싹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자신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잘 이겨내고 있는지, 믿을 만 한 이들이 얼마나 많이 생겼는지. 형편없는 어린아이가 된 듯 눈으로 밝은 금발을 좇다 그녀가 한 켠의 자리에 앉자 저 또한 의자를 더듬더듬 짚어 그 끝에 엉덩이를 붙였다.


"레시나."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모든 단어는 그녀 옆의 사내가 그녀에게 말을 붙이며 흩어졌다. 긴 의자의 끝에서 끝이었으니 어느정도 떨어진 거리였지만 선명하게 들려 온다. 리타는 그 단어에 반응해 고개를 돌린다. 개명이라도 한 건가, 이 때까지는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원래 포주의 애인으로 뒷골목에 발을 들였던 여자고 개명 정도야 이 바닥에서 흔한 일이었으니. 하지만 슬쩍 고개를 돌려 남자의 얼굴을 봤을 때 어디선가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분명 어디에선가 본 얼굴이다. 대화 한 번 섞어보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알고 있을 법 한 얼굴... ...


"...도망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파블로비치."

"글쎄.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데."


 약간 날을 세운 그녀의 목소리에 답하는 부드러운 음성.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레시니크оре́шник의 부장 중 하나였다. 라브린티 파블로비치 베리아. 머릿속을 훅 때린 그 이름에 눈을 키웠을 무렵 사내가 시선을 돌렸고, 위험을 감지한 유리는 지체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기도하는 무리에 섞였다. 차마 눈은 감지 못했다. 레시나лещи́на는 아레시니크가 그들의 여성 주요 부원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녀가 왜 마피아에 속하게 되었는지, 무엇을 위해 그런 선택을 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 머리가 지끈거려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텅 빈 채 손만 모으고 있으니 알 수 없는 죄책감이 그제야 뒷통수를 때려 온다. 식은땀이 흘렀다.


 또각.

 미사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높은 굽이 땅을 지탱하는 소리가 나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여자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순간 마주닿은 시선은, 분명, 자신을 보고 놀란 듯한 눈동자였다. 미약하게 떨린 속눈썹은 곧 공허와 무력감에 휩싸여 제게서 멀어진다. 허리를 살짝 세운 채 멀어져가는 두 인영을 지켜보는 기분은, 차라리 혀라도 깨물고 싶은 류였다면 좋았을 정도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 그 자체였다.


 하나뿐인 나의 누이는 그렇게 멀어졌다.




*



 멍하니 성당 앞에 서서야 깨달았다. 핸드폰을 두고 왔구나. 지금 시간이면 상사로부터 두어 통의 연락은 왔을 텐데, 그런 생각으로도 정신은 한 구석에 두고 온 기분이라. 그제야 깨달았다. 오래된 시계는 그녀가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선물일 뿐이었다.

 가족으로부터 받은 일방적인 통보는, 아, 조금, 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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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티샴 플라 개인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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